시마모토초립 역사문화자료관 (구旧 레이텐칸)

본 관은 쇼와 10년(1935년) ‘난코(楠公)6백년제’를 계기로 12년(1937년)에 건설이 결정되어 15년(1940년)에 상량식과 17년(1942년) 5월16일 ‘난코제’의 날에 준공식이 행해졌다. 후에 ‘레이텐칸(麗天館)’으로 명명되어 고노에 후미마로가 쓴 편액을 걸었다. 쇼와 44년(1969년) ‘오사카부립 청년의 집’의 개설에 맞추어 강당으로 사용되었는데 헤이세이 3년(2001년)에 폐쇄되었고 16년(2014년) 시마모토 초로 양도되어 시마모토초립 역사문화자료관이 되었다. 개관에 앞서서 개수공사가 행해졌는데 석축기단(갑석・탱주석・면석)위에 지어진 팔작지붕・모코지(지붕아래 차양)・현어(박공위에 달린 물고기모양)・격자살 박공・비막이 널벽 등의 전통적인 디자인이었는데 장식적인 요소를 억제한 간단한 당시의 외관은 계승되고 있다.

요코야마케 가택 (요코야마 의원)

목조 2층으로 우진각지붕과 물결모양 기와로 이은 팔작지붕으로 앞면에 바깥채를 지었다. 1층 정면에 돌출격자를 세웠고 2층은 통벽구조로 처마도리까지 칠하고 격자살 창을 냈다. 북서쪽에 히라야(용마루 수평면입구 구조)로 잘 지어진 별채와 연결하고 있다. 구(旧)다카쓰키 성아래에 유일하게 현존하는 근대 서민숙박처의 유구이다. 메이지 25년(1892년)에 이타가키 다시스케 백작이 숙박하였다. 본채 이외에 별장(메이지 시기)・문 및 해자(메이지 시기)・창고(에도 시기)・곳간(에도 시기)도 국가등록 유형문화재이다. 제 1회 다카쓰키시 경관상(건조물 부문)에 선정되었다.

아베노세이메이 신사

제신은 아베노세이메이 공으로 신사내력에 의하면 세이메이 공이 사망하고 2년후 간코 4년(1007년)에 가잔(花山)상황의 의향에 따라 창건되었다. ‘구즈노하葛之葉이별전설’은 에도 시기(1603년~1868년)에 다케다 이즈모에 의해서 인형극 ‘앗시야도만오우치카가미(蘆屋道満大内鑑)’로 되었고 가부키(歌舞伎)와 분라쿠(文楽)에도 상연되어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 에도 말기(1800년대) 유신의 혼란으로 황폐해졌지만 지역유지들의 노력으로 부흥계획이 진행되었고 다이쇼 14년(1925년)에 무형문화재 지정보유자인 요사다 타네지로가 설계하고 시텐노지를 건립한 대목장 곤고 시게하루(하루이치)의 시공으로 준공되었다.

스미에 노가쿠도

스미에 노가쿠도(能楽堂)는 다이쇼 6년에 구(旧)기시와다 성안에 있던 노(能)무대의 하시가카리(橋懸,긴복도)를 하사받고 건립되었다. 현존하는 오사카부에서 가장 오래된 노(能)무대로 국보로 지정된 ‘니시혼간지기타부타이(西本願寺北舞台)’의 형식을 딴 무대로 정원의 흰 모래와 땅에 심은 세그루의 소나무, 무대를 둘러싼 것 같이 ‘L’자 모양의 별채 관람실이 지어져있다. 가카미이타(무대벽)의 그림은 히구치 도미마로가 그렸다. 무대 크기는 두칸 사각형으로 원래 크기보다 조금 작은 편이다. 무대에는 기시와다 번의 마지막 번주(藩主)인 오카베 나가모토 공이 스스로 휘호한 ‘곳카(国華)’ 액자가 걸려져 있다. 다이치시키(対置式)로 흰 모래에 채광될 수 있는 지붕을 걸친 형식은 메이시 시기(1912년~1926년)부터 다이쇼 시기(1912년~1926년)에 걸쳐서 다이치시키에서 니노시키(囲繞式)로 노가쿠도가 이행되는 시기에만 보이는 것으로서 매우 귀중하다. 무대와 관람실이 별채로 되어 있어서 사계절 바람을 피부로 느낄 수 있으며 노(能)가 원래 야외에서 공연되었을 당시의 풍취를 일부라도 즐길 수 있는 노가쿠도이다.

지센 회관

기시와다 방적주식회사의 창설자 데라다 진요모에게 하사된 위로금으로 진요모의 위업을 기념하고 회사사교장 등 구락부시설로서 장남 데라다 진키치가 쇼와 7년(1932)에 지센회관을 건립하였다. 설계는 건축가 와타나베 세쓰, 시공은 (주)오바야시쿠미이다. 이후 기시와다시장이 된 진키치가 퇴직후에 기시와다시에 기증하였고 기시와다시의 귀중한 근대건축시설이 되었다. 기증후에는 주로 집회소, 귀빈실로서 이용되었다. 전쟁후에 시의회 회의실로 사용되다가 현재는 기시와다시의 문화활동의 장으로서 일반공개되고 있다. 와타나베 세쓰의 작품 중에서 비교적 소규모의 것으로 주목할 만한다. 장식이 적은 심볼적인 외관이지만 기둥을 나란히 배치한 현관부 등에 건축양식의 모티브가 보이는 근세의 스페니쉬풍 건축물이다. 전쟁중에 ‘금속류 회수령’으로 샹데리아와 계단손잡이 등 장식금속류는 없어졌는데 대체로 준공 당시의 디자인을 유지하고 현재에 이르고 있다.

다코지조 역

다이쇼 3년(1914) 4월에 오픈한 역사이다. 역 이름 ‘다코지조’는 역에서 서쪽으로 약 500m 거리에 위치한 사찰 ‘덴쇼지(天性寺)’의 통칭명이다. 한때 기시와다성에 잇키(一揆,무사와 농민의 결사조직)의 습격이 있었을 당시 1명의 대법사(지장보살의 화신)와 수 천마리의 문어(蛸)가 위기에 놓인 성을 구했다고 해서 이 사찰에 지장보살을 안치했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바로 이 ‘다코지조 이야기(蛸地蔵物語)’가 그려진 스테인드글라스가 서쪽 역사의 채광창에 끼어져 있다. 다코지조 역사의 기둥일부에는 미국 카네기 철강회사가 제작한 오래된 레일과 1897년(메이지 30년) 난카이철도 창업 당시의 레일도 사용되었다.

아베오지 신사 구(旧)본전・오토야마하치만 신사 본전

아베오지 신사는 장서 ‘셋슈 히가시나리군 아베곤겐엔기’에 의하면 닌토쿠 천황(제16대, 5세기경)의 창건으로 중세에 유행한 구마노 참배의 요배소로서 번영하였고 아베노의 씨신으로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구(旧)본전은 덴나 2년(1682년)에 건립되어 메이지 41년(1908년)에 이축 개수되었다. 오토야마 하치만 신사는 겐로쿠 원년(1688년)에 센바아즈치 마치로 이전 신탁을 받았고 신사 합사령에 의해서 메이지 40년(1908년)에 아베노로 합사되었다. 센바 일대는 공습으로 소실되었지만 구(旧)오토야마 하치만 신사 본전은 에도 시기(1603년~1868년) 센바에 있던 신사 본전의 모습을 전하는 유일한 유구가 되었다.

오사카시립대학 본관(1호관)

오사카상과대학(현 오사카시립대학)은 도쿄, 고베와 같은 구제(旧制)관립 상과대학 3개중 하나이다. 본 건물은 그 본관으로서 건설되었는데 남면(南面)해서 동서로 길게 늘어진 날개부, 그 후면에 강당을 연결하였고 정면 중앙현관의 승용차 진입부와 높은 상징탑을 우뚝 세웠다. 오사카시 건축과(이토 마사후미)의 설계로 흰색 상자모양과 율동적인 느낌을 주는 창과 기둥디자인은 모더니즘 건축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여기저기에 보이는 원통형발코니와 기둥디자인. 내부의 둥근창 등이 표현주의를 느끼게 해준다.

미나세 신궁 배전

본 배전은 쇼와 4년(1925년) 국비로 다시 지어졌다. 설계자는 내무성의 기술관 스나미 다카시이었다. 낮은 기단 위에 세워진 동판으로 이은 팔작지붕의 신사배전은 주변의 숲경관과도 잘 어울리고 웅대하고 차분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처마는 1단 구조로 서카레는 각목으로 배열하고 참배공간 중앙부의 홍예보에 국화를 입힌 화반, 공포는 서카레로 경쾌한 디자인으로 마감하고 주먹코모양을 돌출시킨 독자적인 디자인이 보인다. 다락방은 중앙부를 구조물 뼈대가 보이는 천장에 양 옆칸의 상부에는 격자천장을 붙였다. 스나미는 다이쇼 4년(1915년)에 도쿄제국대학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내무성 신사국 등에서 근무했는데 나가타 신사(효고현, 쇼와 3년), 미시마 신사(시즈오카현, 쇼와 6년) 등 수 많은 신사의 설계에 관여하였다.

간신지 절 금당

금당은 간교 7년(883년)의 ‘간신지연기자재장(観心寺縁起資材帳)’에 기록된 지붕을 편백나무 껍질로 이은 5칸 강당의 후신(後身)으로 무로마치 초기(1300년대)에 재건된 것으로 보인다. 대청은 남면(南面)해서 도리방향 7칸, 보방향 7칸, 골기와로 이은 팔작지붕. 정면 중앙 3칸에 참배공간을 만들었다. 내부는 앞쪽에 2칸을 외진(外陣), 그 안쪽 중앙의 5칸×4칸을 내진(内陣), 그 양옆 1칸을 협진(脇陣), 뒷면의 보 1칸을 후진(後陣)으로 하였다. 내진은 안쪽의 3칸×1칸을 내내진(内々陣)로 하여 감실에 수미단(須弥壇)을 만들어 ‘본존여의륜관음상(本尊如意輪観音像)’을 안치하였다. 수미단을 열면 좌우에 만다라(曼荼羅)벽으로 해 놓았다. 서까래에 차이가 있는 와요(和様)와 센슈요(禅宗様)를 수용한 절충식 불당의 대표적인 사례이다.